미술학

#69. 전쟁과 미술의 관계

adsmattew 2025. 6. 7. 06:30

전쟁과 미술의 관계

전쟁과 미술의 관계: 파괴, 기억, 저항의 시각 언어

전쟁은 어떻게 미술을 변화시켰는가?

전쟁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극단적인 현실의 한 형태이며, 동시에 예술을 깊이 자극하는 사건이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순간 속에서도, 예술가들은 이를 포착하고 기록하며, 고통과 저항, 인간성의 파편들을 시각화하는 데 몰두해 왔다. 전쟁과 미술의 관계는 단순히 ‘기록’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때로는 체제에 대한 복무이기도 하고, 때로는 절규와 저항, 혹은 기억의 형상화라는 깊은 미학적 행위이기도 하다. 전쟁은 예술가에게 현실의 잔혹함을 통과시킨 뒤 다시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게 만드는 통과의례였으며, 그로 인해 미술은 형태와 주제, 감정 표현 모두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쟁은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에 반영되어 왔다. 고대 그리스의 전쟁 조각, 로마 제국의 개선문 부조, 중세 십자군 전쟁의 프레스코화, 나폴레옹 전쟁기의 역사화, 1·2차 세계대전의 참호 속 드로잉과 반전 포스터,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라크전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룬 디지털 아트와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전쟁은 예술가들에게 끊임없이 작업의 주제를 제공해 왔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외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내부의 언어를 변화시키고, 미술이 사회에 대해 발언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계기이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전쟁과 미술의 관계를 세 가지 측면에서 고찰한다. 첫째는 전쟁의 영웅화 혹은 정당화를 위한 미술의 활용, 둘째는 전쟁의 참혹함을 기록하고 비판하는 시도, 셋째는 전후 예술이 전쟁을 기억하고 사회를 반성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미술이 단지 전쟁의 그림자가 아닌, 전쟁에 대한 시각적 성찰과 윤리적 판단의 장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영웅화와 정당화 – 전쟁을 찬양한 미술의 역사

전쟁이 미술 속에서 처음으로 주요한 주제가 된 것은, 그것이 국가의 권력을 드러내는 가장 극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의 개선문 부조는 황제의 승리를 기록하고, 신의 가호를 시각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들은 단지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군사적 정복이 신성한 질서의 일부이며, 황제의 통치가 정당하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전쟁은 궁정화의 주요 테마였으며, 루벤스나 벨라스케스와 같은 화가들은 전쟁을 통한 국가의 위엄과 통치자의 카리스마를 극적으로 묘사했다.

나폴레옹 시대의 자크 루이 다비드 작품은 전쟁 미술의 정치적 활용이 어떻게 강화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은 역사적 사실보다 이상화된 이미지로 전쟁을 영웅적 신화로 재구성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전쟁 미술은 더욱 대중화되고 조직화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각국은 포스터를 통해 청년들의 입대를 독려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전통적 형식의 회화와 조각을 통해 아리아인의 이상적 신체를 표현하며, 전쟁을 인종적 선전의 장으로 전환시켰다.

이러한 전쟁 미술은 철저히 권력의 시선에서 구성되며, 전쟁을 정당화하고 영웅화하는 이념적 수단이 된다. 역사적 맥락을 삭제하거나 미화하며, 희생과 고통을 지워버린다. 즉, 전쟁의 잔혹함을 시각적으로 거세하고, 정치적 이상과 통합의 언어로 치환하는 것이다. 이때 미술은 그 자체로 선동이며,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강력한 도구가 된다.


기록과 고발 – 전쟁의 참상을 응시하는 예술

그러나 미술은 언제나 전쟁을 찬양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쟁의 참혹함, 인간성의 붕괴, 죽음과 상처의 실체를 직면하게 하는 ‘기록자’이자 ‘고발자’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프란시스코 고야는 〈1808년 5월 3일〉과 같은 작품에서 나폴레옹 군에 의해 처형당하는 스페인 민중의 처절한 순간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전쟁의 이면을 폭로했다. 이 작품은 전쟁의 폭력을 미화하지 않고, 냉혹하고 절제된 시선으로 묘사함으로써 전쟁을 비판하는 시각예술의 시작을 알리는 전환점이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참호 속에서 활동한 많은 예술가들은 전장의 폐허, 피투성이 병사, 무너진 인간 존엄을 연필 드로잉과 수채화로 묘사했다. 폴 내시(Paul Nash), 오토 딕스(Otto Dix) 같은 작가들은 전쟁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며 ‘진실의 미학’을 제시했다. 특히 딕스의 〈전쟁〉 시리즈는 병사의 잘린 팔다리, 찢긴 육체, 정신적 충격 등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전쟁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철저히 해체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예술의 중심 주제로 떠올랐다.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와 같은 현대 미술가들은 나치의 기억을 직면하며, 무거운 재료와 회화적 질감을 통해 역사적 책임을 묘사한다. 이러한 예술은 단지 고발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가 반성하고 기억해야 할 윤리적 텍스트로 기능한다. 전쟁을 응시하는 미술은 단지 상처의 재현이 아니라, 역사를 재구성하는 도전이기도 하다.


기억과 반성 – 전후 미술의 과제와 현대적 전쟁 이미지

전쟁이 끝난 후에도 미술은 그 잔해를 오랫동안 마주하게 된다. 전후 미술은 전쟁을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개인과 사회에 남긴 깊은 상처를 탐구하며, 새로운 시각 언어로 해석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1960년대 이후 개념미술, 설치미술, 행위예술은 전쟁의 직접적 형상화를 넘어서, 기억과 반성의 과정을 공간적으로, 퍼포먼스로 재현하는 실험을 시도했다. 마야 린(Maya Lin)의 베트남전쟁 기념비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기념비는 이름과 추모의 공간을 통해, 영웅적 기념이 아니라 상처의 기억으로서 전쟁을 재정의한다.

현대 미술은 디지털 기술과 결합해 전쟁 이미지를 더욱 복잡하게 구성한다.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등 최근의 분쟁에서는 사진, 영상, 미디어 아트, VR 등의 방식으로 전쟁의 이미지가 확산된다. 아르투르 지미에프스키(Artur Żmijewski) 같은 작가는 전쟁 지역에서 촬영된 영상과 인터뷰를 이용해, 전쟁의 현실을 체험적 방식으로 제시하며, 관객에게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디지털 시대의 전쟁 미술은 더 이상 단선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다양한 시점과 해석을 가능하게 하며, 감정과 정보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SNS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전쟁 이미지의 유통은, 미술의 기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는 때로는 프로파간다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즉각적인 저항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으며, 미술은 그것을 기억하고, 고발하고, 질문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장치 중 하나다.


미술은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말하는가?

전쟁과 미술의 관계는 단순한 주제의 선택을 넘어, 인간 존재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그 자체를 포함한다. 미술은 전쟁을 찬양하기도 했고, 고발하기도 했으며, 기억하게도 했다. 권력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양심의 거울이 되기도 한 미술은, 우리가 전쟁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는 데 깊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현대에 들어서는 전쟁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많고, 실시간으로 유통되며, 감각적으로 과잉된 시대 속에서, 미술은 다시금 의미의 재구성과 성찰의 매체로서 중요성을 갖게 된다.

우리가 전쟁을 미술로 본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본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우리 시선을 점검하고, 그 시선이 어떤 윤리와 책임의식을 가지는가를 성찰하는 과정이다. 전쟁은 인간 사회의 가장 비극적인 현실인 동시에, 예술이 인간성과 진실을 시험받는 순간이다. 예술은 그 속에서 고통을 형상화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따라서 전쟁과 미술의 관계는 결코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되묻고 다시 써야 할 이야기다. 미술은 기억의 언어이며, 그 기억은 오늘의 세계가 다시는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경고하는 시각적 증언이다.